


김병직·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관/수산학박사
[우리 땅, 우리 생물] 각시붕어
개나리 초록 이파리를 터트리고, 벚나무 하얀 꽃잎을 떨어낸다. 진한 봄 내음 코끝에 닿으면, 물속에도 어김없이 봄기운이 찾아든다. 새 생명을 준비하는 물고기도 짝짓기에 분주하다. 펄 속에는 다른 생물에게 육아를 맡기는 작은 물고기가 있다.
잉어목 잉어과에 속하는 길이 5cm 정도의 담수어류 각시붕어는 민물조개의 몸 안에 알을 낳는 것으로 유명하다. 타원형의 납작한 몸통에 동그란 눈과 앙증맞은 작은 입, 노란빛이 도는 청회색 바탕에 등·뒤·꼬리지느러미에는 주황 띠가, 꼬리자루에는 선명한 하늘색 띠가 달린다. 뒷지느러미 가장자리는 먹물에 찍은 듯 검다. 서해와 남해로 흘러가는 하천 중·하류와 저수지의 펄이 깔려 있고 말즘(하천이나 저수지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나 붕어말이 무성한 정수역(물이 흐르지 않는 저수지, 연못 등)을 좋아한다. 지역에 따라 꽃붕어, 납작붕어, 납세미 등 색깔과 모양을 반영한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물고기는 저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세대를 이어간다. 알을 낳아 흩뿌리거나 돌 표면에 한 층으로 정교하게 붙이기도 하고, 알 덩어리를 만들어 바위틈이나 모래 속에 숨기기도 한다. 또는 다른 물고기의 산란장에 알을 낳아 맡기기도 한다. 각시붕어가 속한 무리는 2장의 단단한 껍질을 가진 말조개의 몸속에 알을 낳는다. 이맘때 암컷 각시붕어는 회색 가느다란 산란관을 길게 뽑아낸다. 말조개의 숨구멍인 출수공에 산란관을 흘려 넣어 타원형 노란 알을 낳으면, 수컷이 재빨리 수정시킨다. 이틀이 지나면 부화하는데 이때 새끼 각시붕어는 머리에는 돌기가 돋아있다. 말조개 날숨에 튕겨 나가지 않기 위함이란다. 한 달 정도 조개 몸 안에서 보호를 받으며 제법 물고기 모양을 갖춘 새끼 각시붕어는 드디어 조개 몸에서 험난한 물속으로 빠져나온다. 말조개도 산란을 위해 다가오는 각시붕어 몸에 제 새끼를 뿜어 붙여 멀리 떠나보낸다. 이 둘은 서로 돕고 의지하며 영겁의 세월을 함께 살아왔다.
하천 하류에 차곡히 쌓여가는 고운 펄. 다른 생명에게 숨구멍을 내어주는 민물조개가 살고 있다면 건강한 펄임이 틀림없다. 물이 아무리 맑아도 말조개가 살 수 없다면 각시붕어의 장래는 밝지 않다. 이들이 서로 기대며 살아가듯 우리 삶도 자연과 오래오래 함께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