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피 무늬 날개, 큰흰줄표범나비
2014-01-03
정부희
정부희


호피 무늬 날개, 큰흰줄표범나비
[나비목 > 네발나비과]
학명: Argyronome ruslana (Motschulsky)
글/사진 정부희

ㅣ 둥근꿩의비름 꽃 꿀 빠는 큰흰줄표범나비.
6월 초순, 초여름의 길목이다. 오늘은 천마산 기슭에서 여름을 맞는다. 산들바람에 몸을 맡기고 깊은 숨 들이마시며 오솔길을 걷는다. 언뜻언뜻 제비꽃이 피어있다. 봄에 못 피고 이제야 피어난 꽃이 어여뻐 그냥 못 가고 제비꽃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햇빛에 목욕하는 제비꽃이 하도 가냘퍼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나도 모르게 안도현 시인이 따뜻하게 노래한 제비꽃이 떠오른다.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제비꽃에 대해 알기 위해서/ 따로 책들 뒤적여 공부할 필요는 없지(중략)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자줏빛이지
자줏빛을 톡 한번 건드려 봐/ 흔들리지? 그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제비꽃에 대해 알기 위해서/ 따로 책들 뒤적여 공부할 필요는 없지(중략)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자줏빛이지
자줏빛을 톡 한번 건드려 봐/ 흔들리지? 그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봄만 되면 알아서 아무데서나 잘도 피는 꽃, 제비꽃. 길옆에도, 풀숲에도, 돌 틈에도, 시멘트 계단 틈에도, 작은 화단에도, 산자락 밑 아무데서나 피어나는 제비꽃. 앙증맞게 귀여운 꽃과 눈 마주치고 있는데, 이게 웬일? 글쎄 애벌레 한 마리가 잎사귀에 붙어 있다가 꾸물꾸물 기어 나온다. 누굴까? 바짝 긴장하고 고개 숙이고 들여다보니 큰흰줄표범나비 애벌레다. 좀처럼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녀석인데, 여기서 우연히 만나다니! 너무 반가워 말 못하는 애벌레와 호들갑스럽게 인사한다.

제비꽃류 잎사귀 먹는 아기 큰흰줄표범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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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둥근꿩의비름 꽃 꿀 빠는 큰흰줄표범나비.
소 문대로 아기 큰흰줄표범나비의 몸뚱이는 가시투성이다. 회색 끼 도는 갈색 몸뚱이엔 나뭇가지 같은 가시모양돌기가 쫙 덮여 있다. 도톰한 가시모양돌기 위엔 까만 센털이 아카시나무 가시처럼 적당히 박혀 있다. 가시모양돌기 색깔은 고운 연분홍빛을 살짝 띄고 있다. 그런데 가시모양돌기가 뾰족해 웬지 찔리면 긁힐 것만 같다. 정말 그런지 살짝 녀석의 몸을 쓰다듬어본다. 어라? 생각보다 참 부드럽다. 더구나 가시모양돌기에선 아무런 독물질도 안 나온다. 그러고 보니 가시모양돌기는 폼으로 달고 있나보다. 독은 없지만 가시모양돌기는 천적을 따돌리는 데 요긴하게 쓰인다. 녀석이 가시돌기 달린 몸을 마구 흔들어 저항을 하면 새나 거미 같은 힘센 천적들도 겁먹고 함부로 잡아먹지 못할 테니 말이다. 재밌게도 녀석의 몸 한 가운데에는 고속도로가 시원스럽게 뚫려있다. 하얀색 도로가 2차선으로 나 있어 눈 맛이 시원시원하다. 하얀 ‘고속도로(줄무늬)’ 옆에는 까만색 네모무늬가 몸마디 마디마다 각각 찍어 놓아 한껏 멋을 부렸다.
ㅣ 큰흰줄표범나비 애벌레.
신기하게도 아기 큰흰줄표범나비가 먹는 밥과 어른 큰흰줄표범나비가 먹는 밥은 다르다. 아기 큰흰줄표범나비는 아삭아삭 씹어 먹는 주둥이를 가져 잎사귀를 먹고, 어른 큰흰줄표범나비는 기다란 빨대 모양의 주둥이를 가져 꽃 꿀 같은 액체를 빨아 마신다. 그런데 아기 큰흰줄표범나비는 먹성이 까다롭다. 씹어 먹는 주둥이라고 해서 아무 풀이나 안 먹는다. 오로지 제비꽃류 잎사귀만 먹는다. 다만 종류는 상관하지 않고 제비꽃, 졸방제비꽃, 고깔제비꽃, 둥근털제비꽃, 남산제비꽃, 단풍제비꽃 등 제비꽃 집안 식구(제비꽃과)이면 거의 다 먹어 치우니 제비꽃은 죽을 지경이다.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어른 큰흰줄표범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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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큰흰줄표범나비.

ㅣ 큰흰줄표범나비.
제비꽃 잎사귀를 먹으면 무럭무럭 자란 아기 큰흰줄표범나비는 번데기 시절을 거쳐 무사히 어른으로 변신했다. 녀석의 날개는 완전히 표범의 가죽무늬를 꼭 닮았다. 주황색 바탕에 까만 점무늬를 욕심껏 그려놓아 도시 미인처럼 굉장히 세련됐다. 여름은 큰흰줄표범나비의 계절이다. 녀석은 일 년에 한 살이가 한 번 돌아가 여름에만 얼굴을 보여준다.
들판에 나온 녀석은 이 꽃 저 꽃을 찾아 힘차게 쌩쌩 날아다닌다. 먹성이 좋아 꽃이란 꽃은 다 찾아다닌다. 웬만한 꽃에는 꽃 꿀이 푸짐하게 들어있기 때문이다. 튼튼한 알을 낳으려 꽃 꿀을 많이 먹고 영양보충을 해야 하니 틈만 나면 쉬지 않고 부지런히 꽃들을 찾아다닌다. 개망초 꽃, 개당귀 꽃, 큰까치수염 꽃, 나리꽃, 꼬리조팝나무 꽃, 둥근꿩의비름 꽃, 등골나물 꽃.... 들판엔 여름 꽃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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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큰엉겅퀴 꽃 꿀 마시는 큰흰줄표범나비.
마침 녀석이 나리꽃의 꽃잎(화피)에 매달려 꽃 꿀 식사를 하고 있다. 네 다리(앞다리 2개는 퇴화 되었다)로 꽃잎을 꼭 잡고선, 빨대 같은 긴 주둥이를 꽃 속에 쑤욱 집어넣었다 살짝 빼었다를 반복하면서 꽃 꿀 만찬을 즐긴다. 그 모습이 마치 방아를 찧는 것 같다. 정신없이 꽃 꿀을 들이마시는 사이 우연히 핫도그처럼 탐스럽게 생긴 나리꽃의 꽃가루주머니에서 터져 나온 꽃가루들이 녀석의 몸에 다닥다닥 묻는다. 그러든 말든 녀석은 나리꽃을 헤집고 다니며 꽃 꿀을 실컷 들이마시고 쌔앵 다른 포기의 나리꽃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그 꽃에 앉아 또 꽃 꿀을 맛있게 들이마신다. 꽃 꿀 식사를 하면서 녀석의 몸에 묻은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슬쩍 떨어진다. 그러자 나리꽃이 신나 만세를 부른다. 드디어 나리꽃이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꽃가루받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우연치고는 너무도 극적이다. 세상엔 공짜는 없는 법. 어른 큰흰줄표범나비는 꽃 꿀을 먹은 대가로 나리꽃을 중매해줬으니 밥값은 톡톡히 한 셈이다.

중매쟁이 큰흰줄표범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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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큰엉겅퀴 꽃 꿀 마시는 큰흰줄표범나비.
마침 녀석이 나리꽃의 꽃잎(화피)에 매달려 꽃 꿀 식사를 하고 있다. 네 다리(앞다리 2개는 퇴화 되었다)로 꽃잎을 꼭 잡고선, 빨대 같은 긴 주둥이를 꽃 속에 쑤욱 집어넣었다 살짝 빼었다를 반복하면서 꽃 꿀 만찬을 즐긴다. 그 모습이 마치 방아를 찧는 것 같다. 정신없이 꽃 꿀을 들이마시는 사이 우연히 핫도그처럼 탐스럽게 생긴 나리꽃의 꽃가루주머니에서 터져 나온 꽃가루들이 녀석의 몸에 다닥다닥 묻는다. 그러든 말든 녀석은 나리꽃을 헤집고 다니며 꽃 꿀을 실컷 들이마시고 쌔앵 다른 포기의 나리꽃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그 꽃에 앉아 또 꽃 꿀을 맛있게 들이마신다. 꽃 꿀 식사를 하면서 녀석의 몸에 묻은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슬쩍 떨어진다. 그러자 나리꽃이 신나 만세를 부른다. 드디어 나리꽃이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꽃가루받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우연치고는 너무도 극적이다. 세상엔 공짜는 없는 법. 어른 큰흰줄표범나비는 꽃 꿀을 먹은 대가로 나리꽃을 중매해줬으니 밥값은 톡톡히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