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희 사진 글쓴이


개나리잎벌, 개나리 잎을 싹쓸이하다

[벌목 > 잎벌과]
학명: Apareophora forsythiae Sato

 
글/사진 정부희     
 

 


 
    ㅣ 개나리잎벌 애벌레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 머뭇거리나 싶더니 그새 겨울 문턱을 살짝 넘었나 보다. 길옆 풀 숲에선 새싹이 돋아나고, 양지바른 빈 땅에선 성질 급한 봄꽃들이 하나 둘 피어난다. 개불알풀, 별꽃, 주름잎꽃...이에 질세라 수줍은 진달래와 노란 햇병아리 같은 개나리도 앞 다퉈 꽃망울을 터뜨린다. 꽃샘바람이 심술을 부려도 아랑곳 않고 개나리꽃이 한 송이 두 송이 피어나다 보면 어느새 삭막했던 거리는 노란색 물결이다. 찻길 옆에서도, 학교 담장에서도, 공원의 울타리에서도, 건물 너머에서도 개나리꽃이 환하게 날마다 피어나 방실방실 웃는다. 마치 온 세상에 노란색 수채화 물감을 확 풀어놓은 듯하다.

    그런 개나리꽃이 질 때쯤이면 뒤 늦게 개나리 잎사귀가 돋아난다. 게으른 개나리 잎사귀가 파릇파릇 얼굴을 내밀 때면 개나리 밭에 귀한 손님이 찾아온다. 이 넓은 지구에서 오로지 우리나라에서만 사는 ‘개나리잎벌’이니 몸값이 비싼 손님이다. 개나리잎벌은 꽃가루 따러 온 꿀벌들 틈에 끼어 살폿살폿 개나리 밭을 살폿살폿 날아다닌다. 그런데 녀석이 잎사귀에 개나리 위에 앉을 생각은 안 하고 공중을 뱅뱅거리며 잎사귀 주변에만 얼쩡거린다. 앉을 듯  하다가도 뭐가 맘에 안 드는지 저쪽으로 날아가고, 다시 날아와 또 앉을 듯 말 듯 하다 저만치 또 날아가고.......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알 낳을 명당을 찾기 위해서이다.
 



    알 낳는 엄마 개나리잎벌

 

    
    ㅣ
개나리 잎사귀와 개나리잎벌 애벌레의 똥.
 

   개나리꽃밭에 날아든 개나리잎벌 엄마. 녀석은 잎사귀에 앉았다 날았다 또 앉았다 날아올랐다 하더니 드디어 알 낳을 잎사귀를 찾았나보다. 맘에 쏙 드는 새싹을 발견했는지, 엄마 개나리잎벌은 조심조심 새싹 위에 내려앉는다. 그리고선 조심스럽게 배 꽁무니를 살짝 길게 늘여 새싹 위에 갖다 댄다. 이어 배 꽁무니에 숨겨진 산란관이 쏙 나와 여린 개나리 새싹 속으로 들어간다. 신기하게도 엄마 개나리잎벌은 산란관으로 잎사귀의 조직을 잘게잘게 썰고선 그 틈바구니에 알을 하나씩 낳는다. 잎벌류의 산란관은 톱니처럼 생겨 알 낳을 때 잎사귀나 줄기를 잘 썰 수 있다. 그래서 잎벌을 영어로는 쏘플라이(sawfly)라고 부르니 별명 한 번 그럴 듯하다.

 



    개나리 잎사귀는 아기 개나리잎벌의 밥

 

 

 
 
    ㅣ 개나리잎벌 애벌레가 무리를 지으며 움직인다.
 
    엄마 개나리잎벌이 새싹 속에 알을 낳은 지 벌써 열흘 정도가 흘렀다. 드디어 아기 개나리잎벌이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도 아기 개나리잎벌이 깨어날 때쯤이면 어린 싹이었던 개나리 잎도 크게 자라 애벌레들의 밥상이 푸짐해진다. 아기 개나리잎벌은 오로지 개나리 잎사귀만 먹는다. 밥도 개나리 잎, 반찬도 개나리 잎이다. 다행이 봄만 되면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에 개나리가 널려 있으니 먹을 밥이 엄청 많아 녀석들은 먹을 복이 터졌다.

    그런데 아기 개나리잎벌은 절대 혼자 지내는 법이 없다. 늘 여러 마리가 같이 몰려다닌다. 어떻게 몰려다닐까? 그야 집합페로몬을 내 뿜어 흩어져 있는 동료들에게 ‘얘들아, 이리와, 같이 지내자.’하며 물러 모은다. 그래서 적게는 5마리 정도에서 많게는 15마리도 넘게 잎사귀 뒷면에 모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약속이나 한 것처럼 죄다 줄을 딱 맞춰 자리 잡는다. 그리고선 머리를 잎사귀 앞쪽 가장자리에 두고 배 꽁무니는 잎자루 쪽에 두고선 서로 몸을 바짝 붙이고 잎사귀에 앉는다. 도대체 빈틈이라곤 하나도 없다. 얼마나 바싹 붙어 앉는지 물을 부어도 물이 셀 것 같지 않으니 말 다 했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선 잎사귀 밥을 먹기 시작한다. 큰턱을 양 옆으로 오모렸다 펼쳤다 하면서 잎사귀를 한 입 한 입 베어 씹어 먹는다. 식성이 얼마나 좋은지 잎맥이고 잎살이고 가리지 않는다. 그저 닥치는 대로 잎이라는 잎은 게걸스럽게 다 먹어치운다.

 


 
    ㅣ 개나리잎벌 애벌레가 일렬로 잎사귀를 뜯어먹는 모습.
 
    만히 지켜보니 10마리가 잎사귀 하나를 먹는데 15분 정도 걸렸다. 기특하게도 녀석들은 밥상머리에서 절대 싸우는 일이 없다. 그렇게 붙어 있으면 서로 더 먹겠다고 싸울 만도 한데, 오로지 자신의 머리가 닿는 구역만 먹는다. 사람 같으면 며칠만 같이 있어도 의견이 안 맞아 싸우련만, 녀석들은 거의 보름 동안 다투지 않고 합숙하며 한 솥밥을 먹는다.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녀석들은 잎자루만 남기고 잎사귀 하나를 다 먹어치우고선 이사를 간다. 이사라야 바로 옆 잎사귀니 멀지는 않다. 꾸물꾸물 기어서 옆 잎사귀에 도착한 녀석들은 또 잎사귀 뒷면에 떼로 모여 줄맞춰 앉아 식사를 한다. 그렇게 녀석들은 떼로 몰려다니며 잎사귀를 다 먹어치우니, 녀석들이 지나간 곳에는 개나리 잎사귀는 없고 줄기만 앙상하게 남는다.

    그런데 왜 아기 개나리잎벌은 왜 모여 살까? 그야 힘 센 포식자들에게 안 잡혀먹기 위해서다. 여러 마리가 잎사귀에 모여 있으면 언뜻 보기에 잎사귀에 굉장히 큰 벌레가 붙어있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켜 천적이 오히려 놀랄 수도 있다. 더구나 녀석들은 늘 잎사귀 뒷면에 숨어 있기 때문에 포식자의 눈에도 잘 띄지도 않는다. 실제로 잎사귀의 앞쪽에서 보면 녀석들의 머리만 보여 포식자가 잘 못 볼 수도 있다. 곤충의 세계에서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통하는 셈이다.



    털보 아기 개나리잎벌

 

    ㅣ 개나리잎벌 애벌레의 털.
 
    직히 아기 개나리잎벌은 안 예쁘다, 물론 나는 녀석이 늘 사랑스럽지만. 몸이 시커먼 데가 억센 털들이 가시처럼 돋아 요즘말로 ‘비호감’이다. 그래도 한번 슬쩍 쓰다듬어 보니 의외로 부드럽다. 처음 허물을 벗을 때는 몸 색깔이 초록빛을 띠지만 잎사귀를 먹으면서 몸이 커지면 피부색도 까만색으로 변한다. 일단 애벌레의 몸이 무섭게 생기다 보니 사람들이 녀석만 보면 기겁을 한다. 더구나 녀석이 먹는 개나리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공원이나 길옆에 조경수로 심어지다 보니 사람들의 눈에 자주 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민원이 들어가고, 또 식물만 살려보겠다고 살충제를 뿌려대니 아기 개나리잎벌은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다.
 
 

    ㅣ 잎사귀를 뜯어먹으려고 움직이는 개나리잎벌 애벌레.
 
    고 보면 녀석의 몸 털은 사람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다만 아기 개나리잎벌이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감각기관이라서, 바람이 어디로 부는지, 온도는 어떤지, 천적이 가까이 오는지 등등을 금방 알아차리게 도와준다. 알고 보면 징그러워 보이는 털도 거친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가기 위해 변신한 모습이니 기특하지 않은가! 세상에 우리나라에서만 사는 개나리잎벌! 녀석들이 우리 땅에서 사라지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영영 못 볼 지도 모를 일이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다 자란 아기 개나리잎벌은 번데기를 만들러 땅 속으로 내려간다. 개나리 뿌리 주변에서 11달을 자면서 내년 개나리꽃이 만발할 때 다시 어른으로 변신한다. 봄이 오면 개나리꽃에만 눈을 팔지 말고 개나리 잎사귀에 전세 사는 개나리잎벌에게도 따스한 눈길을 줘야겠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