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희 사진 글쓴이


골프장으로 이사 온 등얼룩색풍뎅이

[딱정벌레목 > 풍뎅이과]
학명: Blitopertha orientalis (Waterhouse)
 
글/사진 정부희     
 

 


    ㅣ 루드베키아 꽃잎 위에서 쉬는 등얼룩풍뎅이.
 

  산들바람 부는 초여름이다. 한 낮은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론 선선해 걷기 좋은 계절이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성내천 길을 걷는다. 흙길 대신 벌겋게 포장된 길이지만 그래서 풋풋한 풀냄새가 상큼하다. 길옆에는 벌써 개망초가 계란 같은 하얀 꽃을 피우고, 붉은토끼풀도 귀여운 꽃을 피우고, 꼬리조팝나무도 뒤질세라 매혹적인 분홍 꽃들을 피운다. 천천히 걸으며 이 꽃 저 꽃 이 풀 저 풀 들여다본다. 꽃들 위를 꽃등에류, 배추흰나비, 노랑나비, 꿀벌들이 꽃꿀과 꽃가루를 따 먹느라 들락날락거린다. 잎사귀와 줄기엔 어린 메뚜기류들이 진딧물과 진을 치고 있고, 풀숲 사이에는 파리매가 사냥한 먹잇감을 맛있게 먹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등얼룩풍뎅이’ 날인가보다. 등얼룩풍뎅이가 꼬리조팝나무 꽃차례 위에도, 개망초 꽃차례 위에도, 갈대 잎사귀 위에도, 버드나무 잎사귀 위에도 앉아있다. 녀석은 강원도부터 제주도까지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반갑게 만나는 ‘국민 풍뎅이’이다. 재밌게도 등얼룩풍뎅이는 유난히 골프장을 좋아해 골프장으로 이사를 가 아예 눌러 산다.



   국민 풍뎅이, 등얼룩풍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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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얼룩풍뎅이.

등얼룩풍뎅이 색 변이-검은색 형.














  갈대 잎사귀 위에서 쉬고 있는 등얼룩풍뎅이. 가까이 가니 뒷다리를 번쩍 쳐들어 발길질을 한다. 녀석은 위험이 닥치면 ‘나 무섭지? 가까이 오지마, 가까이 오면 뒷다리로 차 버릴 테야.’ 하면서 뒷다리를 꼿꼿이 세워 위협을 한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깨물어주고 싶다.  아마 거미나 침노린재 같은 포식자를 만났을 때, 녀석이 뒷다리를 쳐든다면 포식자들은 깜짝 놀라 섣불리 공격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꽤 괜찮은 전략이다. 등얼룩풍뎅이는 몸길이가 10밀리미터(8-13밀리미터) 정도로 제법 커 맨 눈으로도 잘 보인다. 생김새는 둥글납작한데, 등딱지날개가 덮고 있는 부분은 약간 네모나다.

    몸 색깔은 대부분 전체적으로 노르스름한 갈색인데, 피부는 마치 참기름이라도 발라 놓은 것처럼 윤이 반지르르 난다. 재밌게도 녀석의 몸 색깔은 변이가 많다. 어느 녀석은 갈색 바탕에 까만색 무늬가 그려진 옷을 입었고, 어떤 녀석은 까만 바탕에 허연색 무늬가 그려진 옷을 입었고, 어느 녀석은 아예 무늬를 없애고 단순하게 까만 옷을 입었다. 그런데 색깔은 조금씩 다르지만 무늬는 비슷하다. 딱지 딱지날개에는 두세 줄의 가로무늬가 있는데, 약간 부채살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으니 말이다. 녀석의 앞가슴등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점각들이 빽빽이 찍혀 있다, 마치 송곳으로 콕콕 사정없이 찍은 것처럼. 뭐니뭐니 해도 등얼룩풍뎅이 하면 놓칠 수 없는 게 바로 더듬이다. 한 마디로 더듬이는 너무도 귀엽게 생겼다.
 


    ㅣ 더듬이 펼친 등얼룩풍뎅이.
 

  모두 11마디로 되어 있는데, 첫째 마디부터 여덟째 마디까지는 구슬을 촘촘히 꿰어단 것 같은 염주모양이고, 마지막 3마디 그러니까 아홉째 마디부터 열한 번째 마디까지는 기다란 나무토막을 굴비처럼 엮어 놓은 것 같다(엽편상). 아무 일 없을 때는 펼치지 않고 꼭 붙여놓고 있다가, 자극을 받거나 이동할 때에는 붙여놓은 더듬이 세 마디를 부채처럼 활짝 펼친다. 더듬이 3마디가 제각각 방향을 향하고 펼치니 마치 포크 같다. 포크 같이 펼쳐진 더듬이(9번째-11번째)에는 놀랍게도 감각기관이 촘촘히 박혀 있다. 만일 레이더 같은 더듬이가 없다면 등얼룩풍뎅이는 어찌 될까?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다. 더듬이로 온도, 습도, 다가오는 천적 같은 주변 환경의 변화를 알아낸다. 게다가 더듬이는 먹잇감을 찾아내거나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짝을 찾아낼 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니 더듬이가 없으면 먹잇감도 못 찾고, 천적도 잘 못 피하고, 짝도 못 찾는다. 그러고 보니 더듬이는 종합정보기관인 셈이다.


    골프장으로 간 등얼룩풍뎅이
  
 


    ㅣ 뒷다리를 들어올려 위협하는 등얼룩풍뎅이.
 

  어등얼룩풍뎅이는 낮에도 보이지만 야행성이라 밤에 주로 활동한다. 짝짓기를 마친 암컷이 찾는 곳은 어디일까? 풀밭이다. 왜냐하면 등얼룩풍뎅이 애벌레의 밥이 풀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 등얼룩풍뎅이는 풀밭의 흙속에다 알을 낳는다. 알을 낳고 엄마는 죽어 아기를 돌보지 못하기 때문에, 엄마는 알에서 깨어난 아기 등얼룩풍뎅이가 곧바로 풀뿌리를 먹을 수 있도록 신경을 쓴다. 재밌게도 골프장엔 풀들이 가득 차 있다. 잘 가꿔진 잔디도 엄연한 풀이다. 그 많은 잔디는 모두 풀뿌리를 달고 있다. 얼마나 푸짐한 풀뿌리 밥상인가! 어디 그 뿐인가? 나지막한 언덕이나 산만 있으면 골프장을 못 만들어 안달이다. 점점 골프장은 늘어만 간다. 그러니 신나는 건 등얼룩풍뎅이다. 하나 둘 엄마 등얼룩풍뎅이들이 골프장 잔디에 모인다.

 


 
    ㅣ 밤에 불빛 아래서 짝짓기하는 등얼룩풍뎅이.
 
  솔직히 녀석들은 여기가 골프장인지 야생 풀밭인지 잘 모른다. 그냥 풀밭일 뿐이다. 녀석들은 다리로 잔디들 틈을 헤쳐 땅굴을 판다. 땅굴을 다 파면 몸이 통째로 땅굴 속으로 들어가 알을 낳는다. 알에서 깨어난 등얼룩풍뎅이 애벌레는 이제부터 깜깜한 지하생활에 돌입한다.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2년 동안 땅속에서 살며 풀뿌리를 맛있게 먹으면서 산다. 그것도 잠시, 잔디를 잘 가꾸겠다고 골프장 관리인들은 살충제를 뿌린다. 영문도 모른 채 아기 등얼룩풍뎅이는 억울하게 죽어간다. 잔디가 멀쩡해야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잔디의 풀뿌리 먹여야한 사는 아기 등얼룩풍뎅이. 그들은 오늘도 서로 다른 입장이 되어, 사람은 지상에서 등얼룩풍뎅이 애벌레는 땅 속에서 쫒고 쫒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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