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직 사진 글쓴이

조피볼락


 

김병직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수산학박사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갈까나” 1927년 윤극영이 작사·작곡한 고기잡이노랫말이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두 번은 불러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 손엔 양동이를, 다른 손엔 낚싯대를 어깨에 걸치고 기대감에 한껏 들뜬 모습이 그려진다. 서해에서 낚시로 잡아 올릴 수 있는 물고기가 제법 많이 있다. 강 하구나 갯골에서는 망둑어(풀망둑), 방파제나 갯바위 주변에서는 놀래미(노래미), 배를 타고 좀 더 멀리 나가면 광어(넙치)나 우럭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 중 우럭이나 뽈락으로 불리며 다른 물고기와 달리 알이 아닌 새끼를 낳는 물고기, 조피볼락에 대해서 알아보자.

조피볼락은 분류학적으로 쏨뱅이목 양볼락과에 속하는 크기 30~40cm 정도의 바닷물고기이다. 우리나라 전 연안 해역의 바닥층 암초 주변에서 살면서 작은 물고기나 갑각류 등을 주로 먹는다. 양볼락과에는 흔히 우럭또는 볼락이라 통칭하는 50종의 어류가 포함되어 있다. 비슷비슷한 녀석들이 참으로 많기도 하다. 하지만 서해에서 볼 수 있는 조피볼락과 비슷한 종류는 황해볼락, 개볼락, 흰꼬리볼락, 볼락 정도다. 조피볼락은 방추형의 몸매에 머리가 크고 몸이 높다. 옆으로 납작하고, 등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 등의 모양새가 물고기답다. 회갈색 또는 흑갈색 바탕에 검은 점이 불규칙하게 흩어져 있는 것이 서해 환경에는 안성맞춤이다. 눈 아래에 3~4개의 가시와 뺨에 2줄의 짧은 흑색 띠는 조피볼락을 식별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저술한 난호(蘭湖,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지방의 어류 기술서인 난호어목지(蘭湖魚牧志) 어명고(漁名考)에서 조피볼락에 관한 내용을 찾을 수 있다. ‘鬱抑魚 울억어’. “서해에 나며, 몸은 둥글고 비늘은 잘다. 큰 놈은 한 자가 넘는다. 등이 높고 검다. 배는 불룩하고 흑백 반점이 있다. 등에 짧은 지느러미가, 꼬리 가까이에 긴 지느러미가 있다. 살은 단단하고 가시가 없으며, 국을 끓이면 맛이 훌륭하다.” 가시가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산지며 몸의 모양, 맛까지 조피볼락의 그것에 딱 맞아떨어진다. 가시가 없는 물고기는 없으므로 다른 물고기에 비해 가시가 적은 것을 가시가 없다고 표현한 듯하다. 어떤 이유에서 우럭어라 불리게 되었는지 어원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피볼락이 예나 지금이나 서해의 명물임은 틀림없다.

물고기 대부분은 암컷이 물속에 알을 낳아서 뿌리거나 붙이고, 동시에 수컷이 수정시키는 체외수정 방식을 통해 자손을 남긴다. 한편 상어나 홍어 등 연골어류와 구피나 망상어 등 일부 경골어류는 암컷의 몸 안에서 알과 정자가 만나는 체내수정 방식을 택한다. 후자의 경우에는 암수가 교미하고 새끼를 낳는다. 조피볼락도 그렇다. 겨울이 오면 짧은 교미를 통해 정자가 암컷 몸 안으로 들어가지만 바로 수정되지 않는다. 아직 알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피볼락의 정자는 암컷의 배 속에서 겨울잠을 자며 알이 성숙하기만을 기다린다. 수온이 오르기 시작하는 초봄이 되어서야 알이 성숙하고 마침내 수정이 이루어진다. 수정란은 어미 몸 안에서 다시 한 달 반 정도 보내고, 늦봄이나 초여름에 새끼로 태어난다. 막 태어난 새끼 조피볼락은 어른 새끼손톱보다 크기가 작고 여리여리하다. 먹잇감이 풍부한 계절이 되어서야 생때같은 자식들을 거친 세상에 내보고자 하는 어미의 걱정 어린 마음이 조피볼락의 진화 역사에 스며든 듯하여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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