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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에 피는 꽃

현진오|2014-01-06|조회 13,667

 

암벽에 피는 꽃

 
글/사진 현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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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구절초중부 이북의 높은 산 바위지대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가을에 꽃이 핀다. 다른 산구절초 종류들에 비해서 잎이 매우 가늘다.

  
  벽을 유난히 좋아하는 식물들이 있다. 암벽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저절로 자라는 모습을 좀처럼 보기 어렵다. 암벽에 자라는 습성이 이름에도 반영되어, 이름에 '돌'이나 '바위'가 붙은 것이 많다. 돌마타리, 돌부채, 돌양지꽃, 바위구절초, 바위떡풀, 바위솜나물…. 물이 부족하고, 온도의 변화가 심하며, 양분도 많지 않은 암벽에서 자라기 위해서는 이런 극한 조건들을 이겨내어 적응해야만 한다. 하지만 일단 이런 능력을 갖추고 암벽에 정착하게 되면, 다른 식물들과의 경쟁이 없는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땅에 비해서 여러 면에서 열악한 바위 겉이나 바위틈에서 자라는 이들이지만 외모나 꽃은 여느 식물들보다 더욱 아름답다.
 

 
    ㅣ 난장이바위솔. 금강산 이남의 높은 산에 비교적 드물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여름에 꽃이 핀다.

    설악산 공룡능선이나 천화대에는 깎아지른 듯한 암벽이 발달해 있다. 경사 70도 이상의 아찔한 이곳 절벽들에 금강초롱꽃, 금마타리, 산솜다리, 연잎꿩의다리 같은 풀꽃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식물의 뛰어난 적응력을 새삼 느낄 수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일어나는 수직의 암벽은 식물들이 살아가기에 열악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무방비 상태로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맞닥뜨려야 하고, 낮과 밤, 계절에 따라 심하게 오르내리는 온도 변화에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흙이 거의 없으니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얻기도 매우 어렵다. 수분이 거의 없는 곳이므로 수분 스트레스에도 강해야 한다. 수직으로 솟아오른 절벽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암벽과 바위도 식물이 살아가기에는 똑같이 어려운 조건이라 할 수 있다.
 

    ㅣ 바위떡풀. 전국의 높은 산 습기가 많은 바위 겉에 붙어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여름에 꽃이 핀다.

    암벽에 사는 식물들은 대개 종 자체가 그런 조건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다. 암벽을 좋아하지 않는 식물이라 하더라도 가끔 몇몇 개체들이 바위에 자라는 수도 있지만, 암벽을 좋아하는 식물들은 그 종에 속하는 대다수 개체가 암벽에서만 살아간다. 천성적으로 땅보다 암벽에 붙어사는 것을 좋아하는 식물들인 셈이다.

    암벽이나 바위에 붙어서 자라는 식물이름에는 '돌'이나 '바위'가 붙은 경우가 많다. '돌에 자라는' 또는 '바위에 붙어사는'이라는 뜻으로, 이들의 생태적 습성을 이름에 잘 반영하고 있다. '돌'이 붙은 식물로는 돌가시나무, 돌꽃, 돌나물, 돌단풍, 돌담고사리, 돌마타리, 돌매화나무, 돌방풍, 돌부채, 돌양지꽃, 돌창포 등이 있고, '바위'가 붙은 식물로는 바위고사리, 바위괭이눈, 바위구절초, 바위돌꽃, 바위떡풀, 바위말발도리, 바위손, 바위솔, 바위솜나물, 바위수국, 바위족제비고사리, 바위취 등이 있다.
 

 
    ㅣ 산솜다리. 설악산과 금강산 일대의 높은 산 바위 겉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5-6월에 꽃이 핀다.
 
    벽을 좋아하는 식물이름들에 모두 '바위'나 '돌'이 붙은 것은 아니다. 당양지꽃, 동강할미꽃, 벌깨풀산솜다리, 산조팝나무, 연잎꿩의다리, 한라솜다리처럼 우리말 이름에 '바위'나 '돌'이 붙지 않았지만 암벽을 좋아하는 식물들도 더러 있다. 이들 역시 바위가 아닌 곳에서 사는 모습을 좀처럼 보기 어렵다. 

    암벽을 좋아하는 식물들은 왜 하필 어려운 환경을 선택해 살아갈까? 돌가시나무, 돌담고사리, 바위수국 등 몇몇을 제외하면 하나같이 북방계 식물들이라는 점이 이 물음에 대한 단초를 제공해 줄 것 같다. 암벽의 열악한 환경이 오히려 북방계 식물들에게는 좋은 생육조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언뜻 보아서는 식물이 생육하기에 나쁜 조건이라 생각되는 설악산 높은 곳의 바위나 풀밭에서 북방계 고산식물이 많이 자라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ㅣ 돌단풍. 소백산 이북의 계곡 바위틈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이른 봄에 꽃이 핀다. 잎 모양이 단풍나무 잎을 닮았다.
 
    산께나 알고 식물께나 아는 이들이 바위를 좋아하는 식물 1순위로 꼽는 것은 산솜다리일 것이다. 산솜다리는 금강산과 설악산 일대의 고지대 바위능선에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자라는데, 그 분포범위가 설악산과 금강산 일대로서 매우 제한되어 있다. 설악산과 금강산에만 사는 특산종인 봉래꼬리풀이나 금강봄맞이와 함께 세계적인 분포가 매우 좁은 식물이라 할 수 있다. 한 송이처럼 보이는 꽃은 수 십 개의 꽃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머리모양꽃이라고 한다. 하얀 솜털을 쓴 채 머리모양꽃을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는 꽃싸개잎을 꽃잎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고산지대에서만 자라며, 별처럼 생긴 꽃을 가지고 있어 산악인들은 그들의 기상을 닮았다 하여 산악인의 꽃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에델바이스라고도 부르는데, 알프스의 에델바이스와 종은 다르지만 비슷한 식물이며, 꽃 모양은 물론이고 고산지역에 사는 점 등 생태적 특성도 서로 비슷하다. 액자에 넣어 팔기 위해 무분별하게 채취되어 멸종위기에 놓였던 시절도 있었으나 지금은 판매 목적으로 채취되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암벽을 좋아하는 식물들 중에서 북방계 식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으로는 바위구절초, 바위돌꽃, 벌깨풀 등을 우선 꼽을 수 있다. 
 

 ㅣ바위구절초.

 ㅣ바위구절초.

















     바위구절초은 산구절초의 일종으로서 학자에 따라서는 산구절초와 같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백두산의 수목한계선 위쪽에서 흔하게 볼 수 있으며, 산구절초에 속하는 다른 종류들에 비해서 잎이 매우 가늘게 갈라지고 키도 작은 편이다. 남한에서는 석회암지대의 암벽이나 설악산 정상부 등 몇몇 곳에서만 드물게 발견된다. 바위를 좋아하여 우리말 이름을 얻었으며, 백두산 등지에서는 화산석이 깔린 땅바닥에서 자라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ㅣ 바위돌꽃. 백두산 높은 곳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암포기와 수포기가 따로 있으며, 여름에 꽃이 핀다
 
     바위돌꽃은 남한에서는 볼 수 없는 북방계 여러해살이풀이다. 백두산 고지대의 바위 겉이나 부스러진 화산석 위에서 자란다. 암꽃이 피는 암포기와 수꽃이 피는 수포기가 각각 따로 있다. 돌을 좋아하여 돌꽃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다가, 다시 바위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참으로 바위를 좋아하는 식물이 아닌가 싶다.
 

    ㅣ 벌깨풀. 강원도 이북의 높은 산에 매우 드물게 자라는 북방계 식물로 여름에 꽃이 핀다.
 
     벌깨풀은 남한에서는 보기 어려운 희귀식물이다.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의 자생지밖에 없는데, 모두 석회암지대다. 석회암벽의 틈바구니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서 잎이 두껍고 거칠거칠한 특징이 있으며, 6-8월에 개화한다.
 

 
    ㅣ 바위채송화. 전국의 산과 들, 바닷가 바위 겉에서 비교적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여름에 꽃이 핀다.

     벽에 자라는 식물 중에서 남방계 식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주도, 추자도, 울릉도의 바닷가 해벽에 붙어 자라는 연화바위솔은 남쪽에 고향을 둔 남방계 식물이다. 드물기 때문에 여간해서 볼 수 없지만, 일단 야생하는 모습을 만나게 되면 누구나 바위에 붙어 있는 한 송이 연꽃을 연상하게 된다. 우리말 이름이 '연꽃을 닮은바위솔'이라는 뜻인데, 바위솔 역시 바위 겉에 붙어 자라는 식물로서 '바위에 붙어 자라는 솔(소나무)'이라는 뜻이다.
 
    바위나 암벽을 좋아하는 식물들 중에서 돌나물은 전국에 분포하므로 온대지방 인자라 할 수 있다. 분포역이 넓은 바위채송화도 그런 부류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는데, 높은 산의 바위 겉뿐만 아니라 고도가 낮은 남해안 섬의 바위 겉에서도 자란다. 두 곳에 자라는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도 눈여겨 관찰해볼 만하다. 산에서는 잎이 가늘지만 바다 쪽으로 내려오면 잎이 더욱 넓어진다.

    금마타리, 난장이바위솔, 돌양지꽃, 바위떡풀 등은 거의 전국에 분포하여 분포범위가 넓지만, 사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개가 고산지역이다. 따라서 이들은 온대 인자라기보다는 북방계 식물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ㅣ 금마타리. 높은 산 바위 겉에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의 여러해살이풀로 초여름에 꽃이 핀다.
 
   금마타리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식물로서 여름철에 꽃이 핀다. 주로 바위 겉에 붙어서 자라지만 가끔 습기가 거의 없는 마사토에서 자라는 모습도 관찰된다. 가야산 등 남쪽 지역에서도 볼 수 있지만 설악산 등 고위도 지역에서 더욱 흔하게 볼 수 있다. 바위지대를 좋아하는 습성이 서로 닮은 돌마타리에 비해서 뿌리에서 난 잎이 둥근 모양이므로 구분할 수 있다.

    난장이바위솔은 바위 겉에 매우 잘 적응한 식물이다. 바위 겉이 아닌 곳에서 사는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전체 모양이 둥글고 작아서 바위에 딱 달라붙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짧은 바늘 모양의 잎은 통통하여 수분을 효율적으로 저장할 수 있다. 금강산 이남의 높은 산에 자라며, 일본에도 분포한다.
 

 
    ㅣ 돌양지꽃. 전국의 높은 산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여름에 꽃이 핀다. 사는 장소에 따라서 잎의 모습이 다양하게 변한다.
 
    돌양지꽃은 흙에서 자라는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는 진정한 암벽식물 가운데 하나다. 사는 고도나 위도에 따라서 변이가 매우 심한 것도 특징이다.

    돌단풍은 북방계 식물이지만 분포 범위가 좁은 편이다. 소백산 어름까지 내려와 자라며, 중부지방에서는 비교적 흔하다. 바위틈에서 주로 자라며 잎이 단풍나무잎을 닮아서 우리말 이름이 붙여졌다. 암벽에 자라는 식물들 가운데 가장 일찍 꽃을 피운다고 할 수 있는데, 설악산의 동해안 계곡이나 동강 일대에서 3월 하순이면 꽃망울을 터뜨린다.
 

    ㅣ 연화바위솔. 울릉도 및 남부지방의 섬에 드물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잎이 달린 모습이 연꽃을 닮아서 우리말 이름이 붙여졌다.
 
    바위지대를 좋아하는 북방계 고산식물들은 암벽등반을 즐기며 더욱 높은 곳을 찾아 호연지기를 기르는 산악인들의 기상과 통하는 데가 있는 듯하다. 암벽의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을 이겨내고 그곳에 적응하면, 경쟁 없이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독점적인 지위를 얻게 된다는 점도 우리가 눈여겨 볼 대목이 아닐까 싶다.